겨우 백오십 년 남짓 만에, 황야는 북녘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개척사, 둔전병, 삿포로 농학교—그 발자취를 연표로 따라가며, 지금도 거리에 남아 있는 사적을 지도와 사진으로 둘러봅니다.
'삿포로'의 어원은 아이누어 '삿 포로 페트'(마른·큰·강)로 보는 설이 통설이며, 도요히라강과 그 일대의 지형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밖에 '사리 포로 페트'(갈대밭이 펼쳐진/큰 습지의 강)로 보는 설 등도 있어,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도요히라(toy-pira=무너진 벼랑)' '핫사무' '고토니' 등, 시내에는 선주민의 말에서 유래한 지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메이지 초기, 에조치는 '홋카이도'가 되었고, 개척사 아래에서 삿포로의 도시 조성이 진행되었습니다. 주요 사건을 연표로.
개척기의 사적과, 옛 건물을 살린 카페·상점을 한 장의 지도에. 색을 탭하면 좁혀 볼 수 있고, 핀을 누르면 명칭·주소가 표시됩니다.
지도: OpenStreetMap / 위치: 국토지리원 지오코더로 주소에서 생성(대략)
개척사 시대에 세워져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들. 대부분 공원과 가로수 속에 있어, 사계절마다 표정을 바꿉니다.

'붉은 벽돌(아카렌가)'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네오바로크 양식. 약 250만 개의 벽돌을 쌓은, 개척의 상징.
앞뜰: 연못을 둘러싼 나무들, 봄의 신록과 가을의 단풍.

옛 삿포로 농학교의 연무장. 클라크 박사의 구상에서 비롯된 학교의 자취이며, 도심의 상징.
거리: 빌딩 숲에 둘러싸여, 눈 덮인 겨울도 운치가 있습니다.

개척사가 세운 서양식 호텔. 연한 물빛(울트라마린) 외벽이 아름다운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나카지마 공원: 창포 연못, 가을 단풍, 눈 덮인 가로수길. 사철 내내 산책하기 좋습니다.

개척사의 영빈 시설. 일본과 서양이 어우러진 구조. 일본 최초의 도시공원 '가이라쿠엔'의 자취를 전합니다.
정원의 노목: 고요한 녹지에, 개척기의 나무들이 남아 있습니다.

개척의 수호신으로 '개척삼신'을 모십니다. 시마 요시타케와도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마루야마 공원·원시림: 벚꽃 명소(에조 산벚나무), 에조다람쥐, 가을 단풍.

메이지~다이쇼의 건물을 이축·복원한 야외박물관. 마차철도가 달리고, 그 시대 속을 걸을 수 있습니다.
사계절: 신록·단풍, 겨울에는 썰매타기와 스노슈도.
삿포로의 사적은 대부분 공원과 가로수와 함께 있습니다. 개척기에 심겨 자란 초록을, 계절마다.
홋카이도 신궁에 인접. 천연기념물인 원시림과 봄의 벚꽃. 에조다람쥐와 들새의 모습도.
호헤이칸과 일본 정원을 품은 도심 녹지. 창포, 가을 단풍, 겨울 설경.
삿포로 농학교와 인연 깊은 캠퍼스. 가을, 기타13조 문의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본래는 도시를 불로부터 지키는 '방화선'. 지금은 사계절의 화단과 라일락, 초여름의 색채.
개척사가 마련한 일본 최초 도시공원의 자취. 개척기의 나무들이 고요히 남아 있습니다.
이축된 메이지 건물을 눈과 신록이 감싸는 야외박물관. 계절마다 풍경이 확 바뀝니다.
근래의 삿포로에서는 역사 있는 건물이나 고민가를 그대로 카페나 상점으로 살리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세월을 두른 공간에서 보내는 한때를.
1926년의 구 홋카이도청립 도서관을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개수. 1층은 상점, 2층은 책장에 둘러싸인 카페.
마루야마 주택가에 자리한, 지은 지 70년이 넘는 목조 고민가를 살린 단독 카페. 삿포로 고민가 카페의 선구자.
개척사 2대 장관 나가야마 다케시로의 저택(1880년경)과 구 미쓰비시 광업 기숙사. 견학할 수 있고, 관내에서 차도 마실 수 있습니다.
1927년, 건축가 다노우에 요시야가 설계한 명주택. 모이와산 기슭으로 이축되어, 지금은 상점&카페로 되살아났습니다.
개척사 맥주 양조소의 붉은 벽돌관을 핵심으로 태어난 상업시설. 벽돌로 지은 복고풍 공간에 가게들이 늘어섭니다.
옛 건물을 살린 갤러리&카페. 전시를 감상하며 건강한 점심이나 차를.
시내 여러 곳에서 역사적 건물을 살린 점포를 운영하는 커피점. 히라기시점·쓰키사무점 등, 세월을 머금은 공간에서 한 잔을. (번외: 에베쓰·분쿄다이의 〈Rinboku〉도 같은 회사의 한 곳)
1926년의 구 삿포로 공소원(법원). 연석(軟石)으로 지은 중후한 건물로, 관내에는 카페도. 오도리 공원 서쪽 끝에.
※각 점포의 영업일·시간·현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방문 전 공식 정보로 확인해 주세요.
오토모 가메타로와 소세이강 — 오토모 가메타로(1834–1897)는 니노미야 손토쿠에게 호토쿠 방식을 배운 막부의 가신. 안세이 5년(1858)에 홋카이도로 건너와, 기코나이·오노의 개간에서 성과를 올린 뒤, 게이오 2년(1866)에 모토무라(훗날의 삿포로무라)를 개척합니다. 이때 판 약 4km의 용수로 '오토모보리'—주위가 '백만 냥의 대공사'라 일컬은 사업—가 훗날 이어 붙여져 메이지 7년(1874)에 '소세이강'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거리의 동서남북 기점은 이 강에서 정해졌습니다.
도요히라강과 쇼진강 — 거리를 만든 것은 강의 힘이었습니다. 도요히라강은 일본 손꼽히는 급류로, 큰비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사나운 강'. 옛날에는 삿포로 중심 부근에서 북으로 꺾여 후시코강을 따라 시노로에서 이시카리강으로 흘러들었다고 하며, 그 분류 중 하나가 소세이강 상류의 가모가모강입니다(지금의 물길은 1941년의 개수에 따른 것). 지류인 쇼진강은 아이누어로 오소우시(강 하구에 폭포가 있는 강). 폭포 때문에 물고기가 거슬러 오르지 못해 '그 위로는 물고기가 없는=정진(쇼진)하는 강'이라 불렀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모이와산, 그리고 뒤바뀐 이름 — 아이누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산, 모이와산. 그 이름은 아이누어 인카루시페(늘 올라 살피는 곳)에서 유래합니다. 한편 '모이와(작은 산)'는 본래 이웃한 마루야마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메이지의 일본인(와진)이 둘을 뒤바꾸어, 그대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산 중턱의 원시림은 천연기념물로서, 개척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북녘 숲의 모습을 오늘에 전합니다.
삿포로 개조(開祖) 두 사람 — 개척사가 오기 전, 안세이 4년(1857) 무렵부터 도요히라강 가에서 나룻배 사공을 지낸 시무라 데쓰이치와 요시다 모하치는 '삿포로 개조'라 불립니다(소세이바시 가에 요시다 모하치의 비). ※'가메다 형제'가 아니라—이 두 개조와, 소세이강의 아버지 오토모 가메타로. 이름이 헷갈리기 쉬운 세 사람입니다.
시노로 이야기 — 시가지보다 앞서, 막부 말에 아라이 긴스케·하야마 세이타로가 개척한 시노로(기타구)는 삿포로에서도 손꼽히게 오래된 개척지. 시노로 신사에 그 발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교케이도리의 유래 — 나카지마 공원에서 서쪽으로 뻗은 '교케이도리'(미나미14조도리)는 메이지 44년(1911)에 황태자 요시히토 친왕(훗날의 다이쇼 천황)이 행계(行啓)하신 길에서 유래한 이름. 거리에는 이러한 유래를 지닌 길 이름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개척의 기록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이 시설들로. 당시의 문서·사진·도구가 보존·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 크레딧: 붉은 벽돌 청사·호헤이칸·세이카테이 © 663highland(CC BY 2.5)/시계탑 Balon Greyjoy(CC0)/홋카이도 개척촌 © t-konno(CC BY-SA 3.0)/삿포로 맥주 박물관 © MIKI Yoshihito, derivative: MrPanyGoff(CC BY 2.0)/홋카이도 신궁 © Immanuelle(CC BY 4.0)—모두 Wikimedia Commons.
이 페이지는 일반 독자를 위한 개설입니다. 연대·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으며, 사적의 현황(개수·공개 상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각 시설과 삿포로시의 공식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